[좋은생각]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퇴근길에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맞은 편에 앉은 그는 무슨 공부를 하는 듯 보였습니다. 얼굴을 책에 묻고 밑줄을 그어 가며 잠시도 한 눈을 팔지 않고, 그야말로 공부의 무아지경에 빠진 듯 보였습니다. 나이는 한 오십 정도. 무릎 위에 올려진 서류가방과 그 위에 펼쳐진 책. 책에다 밑줄을 긋는 그의 고단한 손을 처연히 바라보며 저리도 사력을 다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살이가 새삼 서글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구부리고 공부를 하던 그가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이의 얼굴은 빛나지 않습니까? 그이의 얼굴은 피곤이 누적되어 까칠했지만 그래도 훤하고 어딘가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고개를 든 그는 그 사이도 아깝다는 듯이 보던 책을 눈높이로 세웠습니다. 마침 잘되었다 싶어 고개를 내밀고 얼른 책 제목을 보니 ‘하모니카 교본’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 사람이, 흰머리가 희끗하게 솟아나기 시작한 그 남자가 말할 수 없이 귀엽게 보이면서 그이로 인하여 갑자기 세상살이가 즐거워졌습니다.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는 신명이 나서 이제 입술을 오므려 교본에 쓰인 대로 하모니카 부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앵무새처럼 귀여운(?) 입을 오므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어깨는 바짝 긴장을 하고 요리조리 책에 적힌 대로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생 동안 자신이 전공한 한 가지 일에 몰두해서 환희에 넘쳐서 때로는 좌절에 몸부림치면서도 신명나게 사는 자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어서도 새롭게 무언가 시작하고 그 일에 몰두해 신명을 바치는 이의 모습은 더 아름답고 아름답습니다.

하유빈 님 / 서울 노원구 월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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