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의 ‘향수’

97년 6월

민중가수이면서 대중가수인 안치환의 다섯 번째 앨범이 나왔다.

” 향수 ”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에 낮게 깔리는 어쿠스틱 기타소리. 전주와 간주에 나오는 트럼펫 소리와 하모니카 소리가 그 분위기를 더한다.
짧고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 속에 읊조리듯이 부르는 창법. 세련되고 깨끗하지 못한 절제된 분위기가 깊은 허무에 빠진 시인을 생각하게 한다.
이건 분명히 역행이다. 4집까지 보여주었던 락적이고 강렬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요사이 불고 있는 민중가요의 “락”풍을 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왜일까?
그는 편집후기에 이렇게 말한다.

” 그 시절 노래들은 처절하고 엄숙했으며 정직하고 깨끗했다……. 그야말로 가슴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두었던 노래를 이제야 불러본다. ”

그 시절 노래들에 대한 향수. 그렇다.
진지한 듯 하지만 그 뿌리가 가볍고 진지함마저 상품화에 덧칠하여진 듯한.
그 이면에 숨겨진 자본의 논리에 의해 더 이상 정직하고 깨끗할 수 없는 지금의 노래들 속에서.
그래 이제, 바로 지금 그는 그의 노래를 나즈막이 부른다.

/신개발지구에서/ 그는 “세상의 불공평에 대해 원망하면 아무도 듣는 이 없고 쓸쓸한 들판에서 구름에다 노래한들 무얼해 ” 하며 허공에 외치는 울림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한탄은 B면 첫곡의 /이 세계 절반은 나/ 라든지 민요풍의 가락으로 허무함을 ‘ 예에에 ‘로 표현하고 아리랑이 생각나는 듯한 피아노 솔로가 뒷부분에 나오는 /쐬주/, 그리고 /영산강/ 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노래들의 처절함이나 엄숙함은 현실에 대한 비관적 인식에서 비롯되며 이 노래 자체에서 이것의 극복을 제시하기보다는 한탄함으로서 정직하게 표현하려고 한 듯하다.

동심.
어린 시절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친구에게/, /하얀 비행기/, /약수 뜨러 가는 길/ 등을 들을 수 있는데,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도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정직하고 깨끗하다는 것은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처절할 수밖에 없고 엄숙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런 고통 속에서 다짐하다.
/부서지지 않으리/ 뒷부분의 블루스 적인 기타 애드립이 다짐의 여운을 남기고,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 내 작은 이 한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 – 하면서 역사 속으로 들어간 각각의 나는 바람이 되고 불꽃이 되고 햇살이 된다.
/햇살/ 은 바로 희망이고 낙관이다.
비관 속의 한줄기 햇살. 그를 90년대와 이어주는 단 하나의 이 노래를 통해 그는 반전을 꾀한다.
마지막 미련을 남긴다.

결국 긴 시간동안의 절망적인 그렇지만 정직하고 깨끗한 향수일 뿐이다.

Comments

Powered by Facebook Comments

댓글 남기기

당신의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