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처지

한비자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첫번째는
“송나라에 부자가 한사람 있었다. 어느날 비가 내려 그의 집담장이 무너졌다. 그의 아들이 말하기를 ‘담을 고치지 않으면 장차 반드시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 이웃집의 노인도 역시 같은 말을 하였다. 밤이 되어 과연 그 말대로 재물을 크게 잃어버렸다. 그러자 같은 말을 했음에도 그 부자 집안 사람들이 아들은 대단히 지혜롭다고 여겼지만 이웃집 노인은 도리어 그가 도둑질을 한게 아닌가 의심하였다.”

두번째는
“옛날에 정나라 무공이 장차 호나라를 치려하였다. 그래서 먼저 자기 딸을 호공에게 시집보내 그 뜻을 숨겼다. 정나라 무공은 짐짓 뭇 신하들에게 묻기를 ‘내가 장차 군사를 낸다면 누구를 치면 좋을까?’ 했다. 대부 한 사람이 그의 뜻을 보고 대답하여 말하기를 ‘호나라를 칠 만 합니다’라고 했다. 정나라 무공은 크게 노하여 그를 잡아죽이며 말하기를 ‘호나라는 형제의 나라인데 그대는 호나라를 치라고 하니 도데체 어찌된 건가!’ 하였다. 호나라 군주가 이 소식을 듣고 정나라가 자신을 친하게 여기는 줄만 믿고 정나라에 대한 경계를 태만히 하였다.
그러자 정나라는 호나라를 불시에 습격하여 삼켜버렸다.”

이 두가지 일화를 나란히 제시한뒤 한비자는 이렇게 한탄한다.
“이 두사람의 말은 모두 마땅하였다. 그럼에도 심한 경우는 죽임을 당하고 심하지 않은 경우에도 의심을 샀으니, 무엇을 ‘아는것’이 어려운게 아니라, 앎을 가지고 처세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한비자는 아는 게 어려운게 아니라, “앎을 가지고 세상을 헤쳐가는일”, 곧 ‘처지’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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