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 시오노 나나미

영화를 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제대로 즐기는 사람은 하물며 영화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보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귀차니즘이 그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시오나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로 처음 접했다.
그 영화같은 소설에 매료되기도 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영화광이자 매니아였다.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선 물론 그녀가 소설가이기에 그럴수도 있겠지만 직업의식에..
아무튼 그렇게 영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어찌부면 부르조아적 냄새가 나는 그녀이기에 그럴수도 있다.
부럽지 않은 중산층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에 자기가 하고 싶은 로마사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가서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 그녀에게는..
어쩌면.. 그 모든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하지만 나름대로 그녀는 객관적인 눈과 식견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2차대전의 책임을 반성해야 한다는 걸 봐서도..
하지만 그것도 다 일본이란 자기나라에 대한 민족주의적 사랑과 자부심및 우월감에서 나오는 듯하여 그렇게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봐줄만 하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남자는 게리쿠퍼와 카이사르이다.
쿠퍼는 위대한 평범을 가진 남자이고 카이사르는 위대한 비범을 가진 남자이다.
이두사람이 청혼을 한다면 쿠퍼는 평온한 일생을 제공할것이고 카이사르는 자극적인 두달만을 제공한다면 누구를 선택할거냐고 아들이 물을때 그녀는 명백하게 대답한다.
“설령 두달이라 해도 카이사르를 선택할거야..”
그녀의 소녀같은 감성을 읽을수 있다. 다 큰 아들까지 있는 아줌마이지만…
그건 능력있슴의 반증일수도 있고 평생을 연구하며 글을써온 로마의 영웅에 대한 애정일수도 있겠지만..
암튼 누구나가 맘엔 품고 있을지 모르지만 쉽게 내뱉을수 없는 “자극적인 두달”을 그녀는 망성임 없이 선택한다.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때”에서 처럼 섹스없는 남녀의 애정또는 우정은.. 드라마, 영화, 책에서도 그리고 어찌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일상사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일수도 있다.
물론 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있다고 믿는 수많은 남녀들을 봐 왔기 때문에..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왜 순수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냐는 듯한 대답을 듣기도 하고.. 플라토닉 사랑도 있다는 식의 답변을 듣기도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섹스없는 남녀의 애정이란, 어쩔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생긴 그런 서글픈 상황을 참아야 하는 남녀가 택한 삶의 한가지 방법일뿐, 젊은 독신남녀에게 어울리는 일은 아닌것 같다”

전쟁은 어떤 말로도 미화될수 없는 폭력일 뿐이다라는게 나의 생각이지만..(물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본질은 안그런 사람이 많다)
시오노 나나미에 있어 고대의 전쟁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미학이며 예술이면서 정치행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그녀의 말이 모두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그 무엇도 그것이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과 죄없는 평민들의 죽음에 대한 변명이 될수는 없는 것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역사속의 영웅들과 그 전쟁을 일으킨 가진자들의 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역사와 민족과 정의라는 이름앞에 죽어간 자들에겐 전쟁은 정치도 역사도 민족도 정의도 아닌
오직 생존과 죽음이라는 두가지 밖에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녀의 그런 생각은 이런 뒷마무리로 읽을수 있었다.
“현대에도 처칠처럼 군사적인 자질을 갗춘 정치지도자라야 승리를 얻을수 있다. 마오쩌둥이 말했듯이 정치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이란 피를 흘리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요즘 신세대 여성들에 대하여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머리 좋은 일본 여자는 사랑받기 보다는 이해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한것 같다”
이해 받기 위해서는 거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말이 많아진다는것은 이해받고 싶다는 반증인 것이다.
사랑하는데는 말이 필요없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지만 또 현대처럼 자기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 사회인데..
부부간에도 말하지 않으면 이해할수 없는게 현실 아닐까..?

아마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비속한 인간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의 작품은 비속하지 않다는 것을 보증할 수 있습니다.”
천재는 신이 사랑한 사람이고
수재는 신이 사랑할 정도의 재능은 없지만 천재의 재능을 알아채는 사람.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고.
범재는 수재의 재능은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천재의 재능까지는 모르는 사람. 그래서 행복한 사람.
범재는 행복하다 무얼 몰라서..후후..
이또한 엘리트의 우월심이겠지만.. 자신은 수재라는..
수재가 뭐 별개인가.. 특별난 사람인가..?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 천재가 아니고 노력할줄 아는 사람이 천재다.. 모 이런말도 있고..
사람은 다 태어날때 천재로 태어난다는 영학씨 말도 생각난다.
그래 사람은 다 천재로 태어났다.
범재라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수재라고 으스댈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다 신이 사랑한 천재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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