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한국어 사랑, 그길을 열어갑니다

한국어 사랑, 그길을 열어갑니다

미국 미네소타주 콘코디어 언어마을(Concordia Language Village) ‘숲속의 호수’는 세계 각국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곳. 요즘 이곳에서 한국어 캠프촌이 화제다. 문을 연 지 5년 만에 100여명의 학생들이 여름 캠프를 신청한 ‘사건’ 때문. 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1,500달러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했다. 현지 담당자들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캠프촌이 자리잡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며 놀라워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어 캠프촌을 뿌리내리게 한 사람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한국어학과 러스 킹(Ross King·42) 교수. 한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 1호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어 캠프촌을 제대로 일궈놓은 것을 보고 그의 주변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국어에 관해서라면 ‘물불을 안가리는’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참훼’(讒毁) ‘채보’(採譜) 등 한자어를 거침없이 사용할 정도로 한국어 구사력도 대단하다. 틈틈이 섞어쓰는 한자어를 못알아들어 난감해하는 한국인에게는 “한국어 공부좀 더하셔야겠습니다”라고 말해 자존심을 건드리곤 한다.

킹 교수는 지난해 9월 한국에 와 고려대 BK21 한국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올 여름 한국어 캠프에 등록한 미국 학생들 숫자를 보고 “비로소 한국어가 국제어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 같다”며 반가워했다. 그는 캠프촌을 열 때부터 ‘한국어의 국제화’ ‘국제적인 친한파의 양성’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세웠다. 우선 캠프에서 배운 한국어를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함으로써 한국어의 존재를 알리는 전도사가 되기를 바랬다. 다음 단계에서는 한국어를 배우거나 알게 된 아이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리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이 미래에 사회의 주역이 되면서 ‘친한파’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의 바람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캠프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이 다시 신청을 하는 경우가 40%에 이르고, 입소문이나 친구의 소개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한국어 실력과 유별나다 싶을 정도의 한국어 사랑. 그 고집스런 열정은 대체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싱겁다. 그는 예일대 재학시절 7개 국어를 마스터할 정도로 각국의 언어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1980년대 초반 언어학자들 사이에 미개척 분야로 꼽히던 한국어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누군가가 ‘한국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울 것’이란 자극적인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한국어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20년 전을 회상했다.

83년부터 시작된 그의 한국어 공부는 예상대로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존대법·한자·의성어·어미변화 등이 상당히 까다로운데다가 체계적인 교재도 따로 없어 도무지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재미가 있었고, 독특한 방언도 매력적이었다. 결국 한국어를 마스터한 킹 교수는 소련에 거주하는 고려사람들의 방언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정치적 문제로 사할린으로 흘러들어가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만 했던 한국인의 가슴 아픈 역사와 이민 과정에서 생겨난 방언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86년부터 구 소련의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사람을 찾아다녔다.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연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정치적 문제 때문에 2년 동안 비자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다. 어렵사리 현지에 도착해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녹취할 때는 고달픈 삶과 가슴 아픈 사연에 눈시울을 붉히며 연구에 몰두했다. 그렇게 15년 세월. 그는 현재 함경도 방언에 뿌리를 둔 고려말을 100여개의 CD에 가득 담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외국인으로 한국어를 연구해온 킹 교수가 느꼈던 한국어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끼리 식’이라는 것.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한국어 교육이 재외동포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한 촌스럽고 답답한 교육일 뿐,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줄을 몰랐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가져올 어마어마한 소득을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어 캠프촌 설립에 적극 가담했다. 몇 년 동안 “한국어가 국제어가 되는 것은 미래에 엄청난 자산을 얻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캠프촌 유지를 위한 후원금 모금에 발벗고 나섰다. 캠프 과정을 생활 한국어 프로그램으로 세련되게 관리하는 일도 도맡았다. 이 공로로 그는 2000년 우리나라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외국인이라는 칭찬에 그는 대뜸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말했다. 외국인이 일구어놓은 텃밭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 한국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건강하게 키워내는 일. 그것은 한국인의 몫이라고.

◇‘숲속의 호수’는?

미국 미네소타주 ‘콘코디어 언어마을’(www.concordialanguagevillages.org)의 ‘숲속의 호수’는 1961년 콘코디아 대학의 독일어과 교수의 제안으로 설립됐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 언어교육기관. 현재 13개국의 언어캠프가 진행중이며 한국어 캠프촌은 5년 전 12번째로 출범했다. 참가 인원수로는 8번째로 꼽힌다.

캠프는 여름과 겨울 두차례 모집하는데, 참가자들은 입촌하면서부터 정해진 기간동안 한국인처럼 행동해야 한다. 한국어를 써야하며, 한국 돈을 이용해 물건을 사고 젓가락으로 김치를 먹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한민족이나 한국역사에 대한 딱딱한 교육 대신 풍물이나 태권도 등 활발한 예능교육을 한다. 캠프 기간동안 한국문화에 푹 빠져 지내는 셈. 재미있게 놀면서 한국어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곳을 거쳐간 학생들은 “몇 년 동안 한글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이곳에서의 몇 주 동안이 한국어와 한국을 더 많이 알게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7월28일에 시작되는 이번 캠프에는 입양인과 현지 외국인이 50% 비율로 등록했다.

/글 김정선기자 kjs043@kyunghyang.com/

/사진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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