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땅투기 한번 하시죠… [오마이뉴스]

사모님, 땅투기 한번 하시죠…
노후에 ‘효자 노릇’하는 것은 땅 뿐이라고요?

박문형 기자

엊그제 오전 요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는 남편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재빨리 수화기를 집어들었을 때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음성에 맥이 풀리고 조금 짜증이 났지요. 그 사람은 우리집 전화번호를 확인한 다음에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이 곧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워낙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저는 금시초문이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그 사람은 엉뚱하게도 자기 나이는 서른세 살인데 사모님의 연배는 어떻게 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부동산 업자라는 것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짜증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질문에는 대답도 안하고 지금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해달라고 했지요.

그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며 말을 이었습니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곧 개최되는데 그렇게 되면 평창의 발전이 30년이나 앞당겨집니다. ** 기업의 *** 회장 아시지요? 그 분도 **랜드의 일부를 그쪽으로 옮기고 있으며 ** 기업의 *** 회장도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부동산 업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투자를 할 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니 공연한 수고를 하시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계속 말하더군요

“사시는 곳이 안산 아니십니까? 그쪽 분들이 중산층이라 여유돈이 별로 없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쪽에도 제 고객이 한 20명 계시는데 자기 돈으로 투자하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됩니다. 한 5천 만원 은행에서 빌려도 한 달 이자는 겨우 30만원 돈이에요. 돈이 없어서 투자를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거의 대부분 자신감이 없고, 용기가 없고, 배짱이 없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겁니다. 이거 재고 저거 재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배짱을 갖고 평창으로 딱 들어가면 땅을 통해서 원금 갚고 이자 갚을 수 있습니다. 돈을 돌려서 돈을 버셔야죠.”

구구절절이 너무나 차분하고 열정적으로 말하는 통해 함부로 전화를 딱 끊을 생각도 못하고 다시 한번 우리는 현재 경제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부모님이 호프집을 운영하다가 IMF 시기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사두었던 땅 덕택에 위기를 극복했다며 “결국 효자노릇하는 것은 땅뿐”이라며 노후를 위해서라도 땅에 투자하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윽고 그는 저의 부정적인 반응에 지쳤는지 드디어 용건이 끝난 것인지 자기도 딸이 하나 있는 사람인데 사모님 슬하의 아이 이름을 불러주시면 전화번호와 함께 기억해두겠다고 호객의 열변을 마무리하더군요. 물론 아이의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효자노릇을 하는 것은 땅뿐”이라는 말과 “자신감이 없고 용기가 없고 배짱이 없기 때문에 기회를 놓친다”는 말 때문에 한동안 불쾌했습니다.

부모이면서 자식이기도 하고, 남편이 벌어다는 주는 돈으로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 줄밖에 모르는 저라는 사람에 대한 모욕처럼 들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진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단지 호객을 위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직업삼아 투기를 부추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에게 따끔한 말 한마디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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