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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97년 11월호

1826년에 로버트 오웬이 미국의 뉴하모니주에 건설한 공동체는 불과 18개월밖에 존속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 50년간 미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만든 유아교육원, 여성클럽, 유치원, 무료도서관, 직업학교, 시민극단, 공립학교제도, 지질조사 등은 모두 미국 최초의 것이었다.
이런 19세기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적 공동체들 이후로 1960년대에 베트남 전쟁을 기점으로, 더욱 심화된 사회적 소외분위기 속에서 히피문화(기성세대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거부하는)와 반문명운동(뉴에이지)으로 수많은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공동소유, 공동분배, 자급자족, 명상과 자연과의 조화를 내세웠지만 대부분이 현실적으로, 경제적으로 아니면 구성원들간에 쌓이는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공동체들 중에 몇몇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그들의 이상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들이 수 십 년간 자신들의 이상을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그 이상에 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궁금한 것은 그들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루려고 하였고, 그 문제점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가 라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공동체는 또 다른 실험일 수 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없다.
다만 이 실험이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으로서 기대할 만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지금 필자는 이런 질문을 바로 우리 나라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야마기시즘 마을이라는 한 공동체를 통해 던져 보려고 한다.


야마기시즘 향남 실현지


야마기시라는 닭을 기르던 일본인이 시작한 이 공동체는 현재 일본에서 1500명의 상주 구성원과 3만 여명의 후원자가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1984년도에 경기도 화성군 안중면에처음 생긴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40명의 한국인과 6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짧은 일정이었기에 무언가 큰 것을 얻으리라는 기대보다는 새로운 것을 향한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좀더 솔직히 말해보면 소풍가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어렵사리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분의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시는 걸로 야마기시즘 마을에 첫발을 내딛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난 후 커다랗게 잘 세워진 안내판을 소리내어 돌아가면서 읽고 간단한 질문을 받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공동체라는 개념은 세상과 대립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실현지라는 말이나,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이라는 별명을 즐겨 쓴다고 하였다.
이곳에 와서 빈둥거리는 사람은 없느냐는 질문에 안내하시는 분이 자기가 바로 그렇다며 멋 적은 웃음을 지으셨다. 문제점이나 해결해야할 일에 대해서나, 그리고 작업하는 것이라든지 전반적인 결정사항에 있어서는 '연찬' 이라는 방식을 통하는데 이것은 그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할 때까지 서로 얘기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소개하였다.

이곳은 양계 사업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생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멀리 광주, 대구까지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을 활용자라고 부르며 회원과 참획자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회원은 7박8일간의 특강을 거친 사람들을 가리키며 지금까지 2000여명의 사람들이 거쳐갔다고 한다. 이곳의 특강은 1960년대부터 있었고 그 후에 몇몇 공동체들이 생겼다가 실패했고 지금의 자리에 생긴지는 1984년부터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낙원촌'이라는 캠프를 개최하고 방학 때만 하는 것도 모자라 요새는 격주로 운영하는 '징검다리'캠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농장의 주된 사업이 양계장인데 창시자가 닭을 기르면서 깨달은 것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정말 많은 것들을 닭을 통해서 배우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유유자적하는 모습 속에서 참된 행복의 모습을 본다고 한다. 양계장시설이 순환과 통풍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닭똥 냄새 등이 거의 나지 않았고, 이것을 비료로 이용하고 있다고 하였다.
농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채소밭에 가서는 파를 뽑았다. 닭똥을 이용한 비료를 사용하는데 그 속에는 풀 씨 들이 많이 있어서 특히 밭에 잡풀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거의 50대 50의 비율이라고 할까. 일을 마치고 우리가 준비해간 김밥과 그곳에서 준비해주신 무, 계란 국과 그곳에서 공급한 찐 계란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은 후 큰 회관에서 그곳의 생활상을 사진과 글로서 전시해 논 것을 둘러보았다. 양계부, 공급부, 생활부, 학육부, 채소부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직장이라고 불렀다. 세탁을 맡아하는 곳이 따로 있어서 속옷까지 다 맡아서 해 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맡은 사람에게 말하면 연찬을 통해 결정해서 사온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어머니에게 옷사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이들은 공동으로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자기부모님 하는 개념이 일반과는 좀 다르다고 한다. 자체적인 교육시설은 없고 아이들은 모두 외부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 안에서 문제는 없냐고 하니 문제는 있지만 강하게 키우려고 한다고 그런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잠깐동안 있었던 느낌이나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는데 기억나는 것으로는 대체적으로 평화로와 보이고 참 행복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라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으로 느낄 수는 없고 무미건조할 것 같다 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 안에서는 경쟁이 없겠지만 다른 밖의 사회와 어떤 경쟁(생산물의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한) 같은 것을 통한 문제점이 있을 수 없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직까지는 없고 앞으로 혹시 그런 일이 생길지라도 '연찬'으로 조화롭게 해결해 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그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자기 욕망이 없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인위적인 자유와 평등은 아닌가(마치 닭을 사육하듯이), 참된 자유와 자연과의 조화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것이 무엇을 위해 그런 행위를 낳게 되었는지, 그 바탕을 본다면 달리 볼 수 있으리라는 대답이었다. 또 이런 말들을 하셨는데 먼저 자기자신이 바뀌어야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대립되지 않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그것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이나 다름없다. 대안적인 삶이 완성된 것은 없다. 어떤 틀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야마기시즘은 어떤 틀도 없다. 젊은이들이 대안적인 삶을 찾아가야 한다는 등의 말씀이셨다.
자리가 끝난 후 거기서 생산된 유정란을 기념품으로 받고 짧고 아쉬운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공동체가 살아간다는 건


많은 공동체들은 노동을 매우 중시했는데 이들은 노동(공예나 농사, 건축 같은 전문적이고 전인적인 노동)을 통해서 인간의 내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은 영적 수련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체험은 관념이상의 것이라는 것이다. 체험을 통해, 즉 삶으로서 깨달아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고) 어떤 책에서의 말보다도 삶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변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속에서 그들이 가진 신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통해, 서로의 조화와 화합을 이루기 위해 공동체 운동을 하는 것이고, 이런 삶을 통해 인간의 의식도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공동체들이 세기말의 혼란을 대비하여 완전한 자급자족을 추구하고 태양열과 같은 대체 에너지를 연구하고 있으며 명상이나 선 수련과 같은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노동과 자기수련을 통해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고 공동체와 자연을 통해 조화를 배워가는 것이 일반적인 공동체들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야마기시즘 공동체의 연찬 과정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연찬의 주제는 분배와 공평을 주제로 한 것이다. 토마토 한 개를 가지고 토론자들이 어떻게 하면 가장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다. 이런 토론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게 되는데 '서로가 정직한 마음이면 된다. 제비뽑기는 어떨까? 실제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자. 공평은 어떤 불만도 없는 상태다' 등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여기에서 지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어떤 물건을 분배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셨습니다만 그것과 공평이라는 개념이 결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토마토를 분배받을 수 있는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질 때에만, 연찬의 의미가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런 토론의 자리에서는 정식이 없다. 참가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연찬 과정을 통해 조화를 이루어나가고 대립을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 운동의 문제점과 그 한계


한번쯤 공동체를 접해보았거나 들어보았던 사람이라면 이런 사회에서 살면 어떨까하고 꿈을 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곳이 유토피아가 절대로 아니요 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 안에도 바깥사회와 마찬가지의 문제가 일어날 수 있고 많은 갈등들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안에서의 문제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고, 그들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처음에 언급하였듯이 공동체라는 단어가 왠지 바깥세계와 이곳을 격리시키는 의미처럼 느껴져 피한다고 하였듯이 폐쇄된 하나의 도피집단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 생활들을 알려내고 교육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에 자신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을 공동체 운동에 함께 참여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주의적으로 빠지게 되어 자기만족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사회주의적 사상을 실현한다는 것은 결국에 바깥사회와는 떨어질 수 없듯이 순수하게 지속시킬 수 없고 변형되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자본주의적 구성요소로 남아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각 구성원들간의 상호 신뢰를 계속해서 유지해야하는 문제와 바깥으로는 경쟁과 의혹의 눈길을 견뎌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스라엘과 같이 공동체가(키브츠)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예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아직 공동체의 영향력이 너무나 미미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상을 몸소 실현해보기 위해서 수십 년간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공동체 구성원들은 지금도 새로운 대안의 밑바탕이 되기 위해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그냥 별난 사람들 정도로 우리에게 인식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이들의 삶을 통해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정말로 조화를 이루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화를 이루고 아울러 자기 자신도 그러할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은 너무 큰 것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조화롭게 대립 없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대안으로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람들 중에 몇몇이 말한 내용을 소개함으로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당신들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하나의 탁상공론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 스데반 개스킨(히피운동 지도자)

이곳은 삶을 위한 장소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곳에서의 삶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가고 있는 것이다. - 미가엘 로드스

날짜: 2003-03-22 00:53:13, 조회수: 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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